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시즌 1은 2022년 12월 공개 직후 국내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화제작입니다. 송혜교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학창 시절 끔찍한 폭력을 겪은 한 여성이 성인이 되어 자신을 망가뜨린 사람들에게 정교한 방식으로 복수를 펼치는 과정을 그립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단순한 복수극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상처, 사회적 책임,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까지 던지는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상처의 기억, 복수의 이유 문동은이라는 존재
문동은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외면하거나 잊지 않기로 선택한 인물입니다. 학창 시절,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폭력과 고립을 겪으며 내면이 망가졌지만, 스스로 무너지지 않고 삶의 방향을 정반대로 틀어 복수를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녀의 선택은 결코 충동적이거나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냉정하고 철저합니다. 드라마는 문동은이 가해자들에게 당한 고통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 대신, 현재의 그녀를 중심에 두고 그 상처가 어떻게 그녀를 만들었는지를 조용히 조명합니다. 동은은 대학 대신 검정고시를 통해 학업을 이어가고,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가해자들의 삶으로 조용히 스며듭니다. 이 모든 과정은 단 한순간도 우발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복수는, 당시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침묵의 공모’에 대한 응답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폭력을 당한 자신이 왜 보호받지 못했는지, 왜 누구도 그것을 멈추지 않았는지를 삶 전체를 통해 증명하려는 듯 행동합니다. 동은이 단지 분노에 휩싸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 이 드라마의 핵심입니다. 그녀는 사람의 고통을 기억하는 힘이 얼마나 큰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며, 잊고 지나가는 것들이 얼마나 쉽게 또 다른 피해를 만들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말하는 존재입니다. 특히 동은의 외로움과 침묵 속에 담긴 절제된 감정은, 오히려 그 어떤 울부짖음보다 강력한 감정선으로 다가옵니다. 그녀의 복수는 단지 고통을 돌려주는 행위가 아니라, 상처를 바라보게 만드는 통로이자,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감정과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가해자의 얼굴 미화 없이 드러난 악의 평범함
더 글로리가 특별한 이유는 가해자들을 ‘괴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박연진을 비롯한 가해자들은 사회 속에서 성공하고 존경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겉보기엔 평범하거나, 오히려 ‘잘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설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드라마는 악이 특별한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권력의 틈에서 쉽게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학폭을 가하고도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살아가는 인물들. 그들의 뻔뻔한 일상과 동은의 침묵이 교차되면서 시청자는 ‘정의는 왜 지켜지지 않는가’라는 감정에 직면합니다. 더 글로리는 악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현실적으로 그려냅니다. 그들은 후회도 죄책감도 없이 살아가며, 누군가의 인생을 짓밟은 사실조차 잊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동시에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합니다. 복수는 단지 고통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외면했던 책임을 다시 묻는 방식입니다. 폭력 장면은 암시적으로 처리되고, 중심 메시지는 ‘정의의 회복’과 ‘사회적 각성’에 있습니다. 더 글로리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삶을 고루 조명하며, 인간 내면에 있는 선과 악의 모호함을 드러냅니다. 특히 가해자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자기 안의 공포를 마주하게 되는 구조는 단순한 응징 이상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공감과 회복의 새로운 서사
이 드라마의 가장 큰 힘은 복수가 단순한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문동은은 복수를 통해 가해자들을 무너뜨리지만, 정작 그 과정을 통해 자신도 상처받고 고통받습니다. 이 드라마는 복수를 통해 삶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은은 몇몇 인물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인간성과 따뜻함을 다시 회복해 갑니다. 특히 주여정과의 관계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그는 동은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복수가 아닌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이 드라마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듭니다. 정의는 단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공감과 용서, 그리고 책임 있는 행동이 함께 따라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더 글로리는 단순히 ‘가해자는 벌 받아야 한다’는 당위에서 멈추지 않고, 그로 인해 생긴 ‘상처의 구조’를 함께 보려 합니다. 이는 사회가 ‘어떻게 가해자를 양산했는가’, ‘왜 피해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결국 드라마는 정의란 감정이 아닌 선택과 행동의 결과임을 보여주며, 시청자에게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더 글로리 시즌 1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사회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며, 정의와 회복이라는 진지한 메시지를 던지는 드라마입니다.